'겨울 낮달' 외 2편/ 조재훈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2.11.14 11:02 의견 0

● 겨울 낮달

이승에 놓아 둔
무거운 빚을
아직 머리에 이고 계신가요
수척한 산등성이에
숨어 오셔서, 쩔룩쩔룩 숨어 오셔서
핏덩이로 남긴 막내가
배다른 형제들 틈에 끼여
어떻게 섞여 크는가,
수수깡 울타리 속에서
배곯지 않는가 보려고
핏기 없는 얼굴로
서성거리고 계시군요.
불 끄고 한 밤중
홀로 눈물 삭히던 울움,
얼음 아래 나직이 들리고
집 나간 지아비 기둘려
발등 찍어 호미날에 묻어나던
복사꽃 상채기,
머언 연기로 보여요
빈들이 잠들고
산 하나 경전처럼 누워 있는
무심한 이승에
모처럼 나들이 와 계신가요.


● 베이징 낮달

어머니,
고대 들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바람 부는 하늘 한 구석지에
있는 듯 없는 듯
떠 있는,
마흔 넘어
몸을 버리신,
유랑의 술로 한 시절
아배는 낯선 도시를 떠돌고
울도 없는 초가삼간
때 절은 핏덩이
너덧 데불로
너덧의 바람을
빈 몸으로로 막으셨던
가느라단 불빛,
달팽이 제 집이라고 머리에 이고
힘겹게 혼자서 기어가는
이슬 새벽에
어머니,
노자도 없으신데
여기 다른 나라
인심 사나운 땅까지
물어물어 오셨군요.
말없이 내려다보시는
여윈 얼굴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군요.


● 해월(海月)

우는 아기 한울님
따 따르르 베 짜는 며눌아기 한울님
칠십 평생 정성껏 보따리 모시며
이 산골 저 산골 숨어사시던
어른, 이르시는 곳마다
과일나무 심으시며
사람 속에 한울님이 사시니라
밑바닥이 한울님이니시라
밥이 한울님이시라
조용조용한 말씀,
큰나라 섬기는 것들의
총칼에 쫒기며
흙 깊숙이 씨알을 묻듯
한 많은 백성들의 가슴 속에
꿈을 심으시던
어른, 얼룩진 근세사의 페이지에
치솟는 한 가닥 샘물이,
망나니의 칼에 잘린
당신의 피가
삼천리 산하에
강물처럼 불어납니다.
진달래처럼 피어납니다.
무섭게 무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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