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임화(2)/ 김상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2.11.13 08:59 의견 0

1, 시대개관

1908년, 임화는 조선이 멸망하고 일제의 식민화가 심화되던 시대에 태어난 불운아였다. 대체 조선은 왜 멸망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을까.몇몇 중요 전거들을 재구, 좀 새로운 형태로 이야기해 보자.

가, 내인

조선은 결코 하루아침에 멸망하지 않았다 중병이 들고 골병이 든 조선은 서서히 망해갔다. 자, 그렇다먼 조선은 왜 중병에 들고 골병에 들었을까 이에 대한 다양한 진단이 있을 수 있으나 나는 좀 정치경제적 시각으로 보고자 한다

잘 알다시피, 조선봉건사회의 기반은 토지였다. 국가의 기본구성체인 백성들은 농토를 기반을 생을 부지하였다.

중요한 것은 조선에 있어서의 토지가 저 서양의 봉건사회의 토지 개념과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서양 중세의 봉건적 영토를 상징하는 '장원'은 크게 영주보유지와 농민보유지가 있었다 전자가 예속적이었다먼 후자는 좀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봉건사회>의 저자 마르크 블로크에 따르먼,

"장원이란 무엇보다도 종속적인 소경영지의 군집체였으며, 자유토지소유자가 토지보유농으로 전환되먼서 새로운 의무를 걸머지더라도 경영의 방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런 체제 하에서 농민들은 공조를 지불해야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십일조다 즉 수확량의 10분의 1을 보호의 대가로 영주와 기사에게 바쳐야 했다.

무론 자유로운 토지보유농이라 하더라도 공조 외에도 부역과 잡세 등 짊어져야 할 세금은 실로 무거운 것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의 계약관계로 이루어진 합리적 체제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조선의 경우와는 너무나도 대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의 경우에도 자유로운 토지보유농에 해당하는 자작농이 있었다 이들이 사회구성체의 80 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국가 세입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조선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토지에 의존한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조선의 자작 농민이 자유롭고 싶어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자, 논의를 더욱 전개해 보자

대체 조선의 농민들은 왜 자유롭고 싶어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을까 그것은 소위 '막비왕토莫非王土'라는, 즉 조선땅은 왕의 영토가 아닌 게 없다는 불물률이 하나의 정통으로 사회적 모럴의 중심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토지는 국왕의 소유라는 표방하에 왕실, 귀족, 관리, 토호들의 사유지로 분배 내지 세습되었고 농민들은 실제로는 농노적 상태로 존재하였다 가령, 저 예산의 추사고택도 나라에서 임금이 하사한 땅이었으니 조선땅은 거인왕이 제멋대로 주무르는 땅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상태에서 피와 땀을 바쳐 죽을 고생을 해 농사를 지어도 농민들은 지주들의 소유지에 얽매어 수확물의 절반을 도조로 물어야 했고, 또 소작 농민들은 지주를 대신하여 중앙정부에 국세에 해당하는 조세를 납부해야 했음은 무론 지방 특산물인 공물을 바쳐야 했고 병역의 대가인 군포를 물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 거인왕의 대리로 와 있는 지방 관찰사와 이에 딸린 세리, 토호 등이 한덩어리가 되어 또 다른 착취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었으니, 이중삼중 아니 사중오중으로 착취의 덫에 걸린 백성들은 급기야 참지 모하고 이반의 임계점에 이르렀으니, 그 최초의 반봉건 농민항쟁이 진주에서 불타올라 동학혁명으로 조선천지를 놀라게 하고 동양의 세계에 경천동지의 바람을 몰고 왔으니, 급기야 정부의 요청에 의해 청군과 일본군이 이들을 막기 위해 조선땅에 들어와 동학도들을 잔인하게 도륙하고 세력 싸움을 벌여 조선의 운명이 사자 아가리에 놓이지 않았것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것은 과연 지방관의 가혹한 가렴주구였다 모든 민란의, 조선 멸망의 불씨는 바로 왕토사상이라는 전근적이고 전제적인 착취 관념의 결과였다.

이에 조선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지식인 그룹인 실학자들의 제일 관심사는 토지 개혁에 대한 사회적 디스꾸르, 곧 전론田論이 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거인왕과 착취체제의 상위를 차지하는 지배집단은 개혁을 거부하였다.

하나의 사례로, 일제 하 조선 소설의 개가로 평가되곤하는 이기영의 걸작 <고향>은 충남 아산의 소설적 공간인 원터 마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지주와의 투쟁을 실감나고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거기 소설의 중심 무대에서 악의 역할을 하는 안타고니스트는 안승학이라는 마름이다. 누구의 마름인가 바로 '서울 사는 민판서집' 사음이 아닌가.

이런 사실은 조선 말 이후 일제 하에서도 토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씨를 비롯 노론 지배세력이 여전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또한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가로지르는 중심 테마이고, 이에 영향을 받은 조정래 <태백산맥>의 민족문학사의 대성취가 이에 값하는 거 아닌가

대체 조선은 안으로는 토지 때문에 망하였으니...

대체 왜 역사인가 과거를 통해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청동거울이기 때문이다.

청년 임화, 김상천 지음(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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