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임화(1)/ 김상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2.11.08 16:46 | 최종 수정 2022.11.08 16:49 의견 0

임화는 결코 빨갱이가 아닙니다. 대체 최고의 엘리트 김수영이 왜 임화를 존경했는지...

임화, 그는 하이네, 위고를 비롯 파스칼, 몽테뉴는 무론 마르크스, 헤겔 등 이루 언급할 수 없는 방대한 독서력과 두터운 교양, 문학적 실천을 바탕으로 저 카프의 대선배인 박영희, 김팔봉을 까부수고 자신의 왕국을 세운 조선의 세계적인 사상가이자 이론가이자 실천가입니다.

아, 씨파! 그 누와 나누것는가, 이 진실을...
놀랍다 모해 무서운 사실을, 도저한 문자의 세계를...
그 누가 있어 나누것는가. 임화를 공부하먼서 밟히는, 이 방외의 거대한 페이소스의 어떠함을...

'청년' 임화의 전기적 스케치

조선학을 메트로학으로 키운 민족문학사의 기수!

임화는 조선이 멸망해 가던 1908년 10월 13일 서울 낙산 밑의 소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21년(13세)부터는 경성시에 있는 보성중학에 진학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작문을 잘 하여 늘 백점을 받"는 재능 있는 학생으로 각인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고 가정이 파탄하여 학교를 중도 포기하고 굶주린 늑대처럼 거리를 헤매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가정 파탄, 학교의 중도 포기, 그리고 고독! 이것은 소년 임화에게 궁핍한 시대의 시련이었고 그가 감당해내야만 할 생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그러니까 한편에 문학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지닌 소년 문사가 왜 하이네, 위고 등 감상 풍의 공화주의를 떠나 크로포트킨의 거칠고 과격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다가 다다이즘 등 전위주의 운동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종래에는 1926년에 조선 공산당의 영향 하에 있는 카프에 가입하게 되었는지 고독한 자아가 어티케 해서리 문제적 의식을 지닌 돌멩이가 되고, 나아가 사회의 일원이 되었는지 그의 사회입성기를 조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곧 이어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현해탄을 건너 동경 지부 카프에서 생활하다 귀국, 1932년 카프의 서기장으로 있다 1935년 해체시까지 함께하였습니다.

카프의 해체는 또한 임화에게는 제2의 삶이었습니다 자료('어떤 청년의 참회')를 보니, 그는 이때 자신의 경험을 귀납할 '위대한 일반화'의 시기를 맞았습니다.

"그 뒤 카프는 해산되고 경향문학은 퇴조하고, 그는 병들어 수년간 시골 가 누웠다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파스칼과 몽테뉴를 읽고 헤겔을 심복하고 고전을 읽고 역사에 흥미를 갖고, 새로운 심정으로 문학을 다시 시작하여 한 책의 시집과 이삼 권의 졸렬한 저서를 만들고, 지금엔 주로 비평과 시를 써서 근근히 미염의 자를 구하여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대상화하는 독특한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자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 물러나 한가한 철학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담담하고 객관적인 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임화가 위대한 산문정신을 상징하는 저 프랑스와 독일의, 특히 '헤겔을 심복'하고 고전을 읽고 역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고, 이것이 하나의 꽃이자 열매로 한 책의 시집과 이삼 권의 졸렬한 저서로, 비평과 시로, 뭐 조선학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저 1930년대 일제의 조선문화말살정책에 맞서 김태준 등 당대 최고의 조선학의 대가들과 더불어 학예사의 '조선문고' 시리즈와 정력적인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조선학을 하나의 메트로학으로 키우는데 피오닐의 역할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은 우리가 그동안 임화를 너무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운동사의 협착한 맥락에서 만 보아온 결과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이에 본 글에서는,

먼저, 서론적 성격을 지닌 글을 통해 임화가 어떤 사회정치적 환경socio-political milieu에서 활동하였는지 당시와 활동하던 청년시대의 시대상을 개관해 보고,

첫째, 이런 시대에 꽃을 피워낸 임화 '단편서사시'의 문학사적 성취가 지닌 의미가 무엇이고,

둘째, 이런 문학사적 성취가 어떤 이념적 근거에서 나왔는지 임화의 '조선적 리얼리즘론'을 정치하게minutely 톺아볼 것이며,

셋째,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에 있어서 이런 임화의 사상이 왜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지닌 '현실주의적 언어관'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지...등 임화문학예술전반을 가로지르는 예술론의 도저한 심부를 중후장미하게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임화(1908~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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