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Karma)/ 이현

타인은 나의 거울이다. 혼자서 거울을 보노라면 거기에 수없이 많은 타인들이 섞여 살지 않던가.

하무뭇 승인 2022.05.24 06:10 의견 0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 작은 충격같은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이나 행동이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주 하찮은 것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조심한다. 한 마디 말도, 하나의 움직임도.

카르마. 우리말로는 흔히 ‘업’이라고 불린다. 불교의 인과응보론을 기반으로 한 생사관이다. 이러한 사고관을 따라 가면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의 결과이고,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의 결과가 될 것이다. 즉, 현재의 자기 자신의 모습은 과거가 만들어 놓은 자신의 ‘업’을 진 결과물인 셈이다. 아울러 미래의 나는 현재 자신의 삶이 어떠한가에 대한 태도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팔자 타령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현재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충실히 살아가는가가 문제가 된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내어 놓고 싶은 삶의 길을 틀어서 현재의 업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것. 그것을 나는 카르마로부터 배웠다. 주어진 순간의 삶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전세, 현세, 내세로 이어지는 생사관을 별도로, 이러한 사고방식은 동시대의 ‘인간관계론’에도 연결할 수 있을 듯싶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내가 그에게 보여준 언행의 결과이고, 내가 바라보는 ‘타인’은 내가 그에게 제공한 원인의 결과라는 생각. 너도 옳고 나도 옳은, 혹은 너도 틀렸고 나도 문제가 있다는 양시론이나 양비론과는 다른 관계론.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는 모두 결과의 원인들이다. 어느 날 타인이 나를 대하는 얼굴빛이 변한다면, 그의 변화는 당연히 나로부터 그 잘못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모르는 별로부터 왔다. 그리고 만나면서 상처받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위로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결과의 원인이 되는 삶을 살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타인의 험한 말과 행동을 단지 그의 성격이나 인간성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성인군자의 덕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그것은 나의 삶에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하찮은 것에 분노하고 증오 섞인 맘으로 몸을 채우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가. 설령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를 입힌 것이 전적으로 타인의 잘못이라도 반면교사로 삼으면 그뿐이다. 세상에 스승 아닌 자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만나고 보고 겪는 모든 인간들은 좋건 그르건 우리를 가르친다.

타인은 나의 거울이다. 혼자서 거울을 보노라면 거기에 수없이 많은 타인들이 섞여 살지 않던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떤 것이 어색한 타인의 원인인지 불확실할 때가 있다. 곰곰이 나의 삶을 돌아보면 답이 있다. 그러한 고민과 반성을 통해 ‘나’는 긍정적인 ‘미래의 나’를 만드는 좋은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대로의 ‘업’이다.

(이현/ 시인, 문학평론가)

타인은 나의 거울이다
이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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