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sapiens)/ 이영철

과학혁명은 사피엔스에게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생활의 안락함, 수명연장의 꿈을 제공했지만, 그보다 더 불행하고 탐욕적인 핸디캡이 노출된 시기였다.

하무뭇 승인 2022.05.19 04:48 | 최종 수정 2022.05.19 06:43 의견 0

7만년 전에 6종(種)의 인류중에서 호모 사피엔스만이 지구라는 행성을 지배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당시에는 주변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주목받지도 위험하지도 않았던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는데. 이 책은 인류의 진화와 미래에 관한 거대 담론이다.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서 동원한 학문만 얼핏 나열해도 생물학, 물리학, 인류학, 고고학, 진화심리학, 역사, 과학, 종교, 철학, 경제학, 사회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실, 각 학문에 정통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한 작가가 이런 학문을 통합하여 무리없이 풀어나간다는 것은 비범한 재능을 소유한 한 명의 사피엔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가설에 불과한 것도 있고 팩션인 것도 더러 있지만 저자는 아주 짜임새 있게 약 40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기나긴 진화과정을 그의 판타스틱한 서술과 정교한 논리로 펼쳐 나간다. 나는 정말 그의 이론에 완전히 설득 당했다.

인간과 침팬지와의 유전자는 2%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인간과 침팬지를 무인도에 1:1로 살게 한다면 침팬지가 살아남을 확률에 나는 배팅을 하겠다. 1:1로 결투를 해도 침팬지가 이길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1,000명의 인간과 1,000명의 침팬지가 전쟁을 한다면 인간이 이길 확률이 높다. 인간에게는 인지를 가지고 사냥 및 협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게다가 사피엔스는 언어를 구사하여 신화와 허구를 만들어내는 재능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사피엔스와 침팬지, 다른 종들의 가야할 운명을 결정지었다. 사피엔스가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가 된 것은 디킨스의 소설 문장처럼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기였다. 태고의 원시를 찬란한 문명의 제국으로 분장시킨 설계자였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행성의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군림한 이래로 다른 종들은 사피엔스의 생존과 탐욕으로 멸종에 가까운 불운을 맞이했다. 그나마 해상동물은 육상동물 보다 운이 좋았다. 관용은 사피엔스의 특징은 아니었다. 하기야 같은 종(種)인 사피엔스 조차도 수억 명 몰살시키는데 이종(異種)에 대한 행위의 결과에 그렇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한 마디로 사피엔스의 출현은 생태적 재앙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슬기로운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 규정했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 진화와 발전의 배경으로 세 가지 혁명을 말한다. 7만년 전의 인지혁명, 12,000년 전의 농업혁명, 500년 전의 과학혁명이 그것이다. 인지혁명은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우연의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사피엔스의 시대에는 공룡은 없었지만 매머드 같은 동물들과 같이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동물과는 공존했었지만 사피엔스에게는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다른 종 보다 더 교활하고 영리한 우월한 DNA가 사피엔스의 피에 흐르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결과는 그들이었다. 침팬지가 인지능력을 먼저 가졌다면 지금의 나는 글을 쓰고 있지 않고 휴먼랜드의 동물원에 갇혀 침팬지가 던져주는 쌀과자를 얻어 먹고 좋아서 손뼉치며 덤블링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사피엔스에게 어떻게 인지능력이 생겼는지는 저자도 우연히 발생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뇌의 내부배선을 바꿨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아무튼 인류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농업혁명은 주거의 안정과 예측가능한 식량의 조달, 야생동물의 가축화, 부의 축적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보다는 계급의 차이와 가혹한 노동, 수탈이라는 불평등의 결과를 초래했다. 농부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은 이전보다 덜 먹고 덜 가지는 불만족스런 힘든 생활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오히려 수렵채집인들이 자유롭고 평등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함께 협동해서 잡은 사냥감이나 과일, 생선을 공평히 분배했으니까. 과학혁명은 이전의 몇 만년 보다 더 눈부시다 못해 졸도할만 한 결과를 가져왔다.

과학혁명은 사피엔스에게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생활의 안락함, 수명연장의 꿈을 제공했지만, 그보다 더 불행하고 탐욕적인 핸디캡이 노출된 시기였다. 9천년 전 아르헨티나의 동굴 벽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손도장을 찍었던 수렵채집인은 사피엔스였다.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역사상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겼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도 사피엔스였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첫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도약이라는 멋진 멘트와 함께 사피엔스의 과학과 기술은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라는 우리의 동화와 하늘거리는 화이트 톤의 옷을 걸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등장하는 그리스신화의 환상을 기억 속에서 깔끔하게 지워 버렸다. 이제 사피엔스가 고대 이래로 신앙처럼 집착했던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 숲속의 요정, 천사, 악마, 유령, 귀신, 부족의 정령을 레테의 강으로 흘려 보내는 것은 과학의 입장에서는 시간의 문제이다. 신화나 전설, 동화에서 위안을 찾았던 로맨티스트들은 지금은 리얼리스트로 살아야 할 사피엔스만 존재하게 될 처지로 내몰렸다. 그 만큼 사피엔스의 진화와 발전의 속도는 그들 자신이 감당하기에도 숨이 가빴다.

그렇다고 사피엔스의 미래가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금 보다 더 정밀화되고 분화된 과학혁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면서 미래지향적이다.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파생의 과학기술은 사피엔스의 존립마저도 위협할 것이고 그들의 모습마저도 변형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걱정어린 경계심마저 든다. 얼마 전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뉴스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쇼크이다.

여기서 행복에 대한 철학적 고민도 동반된다. 과연 현대의 우리가 중세인 보다, 아니 동굴 속에 거주한 네안데르탈인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산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저자는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한다. 나도 동의한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행복에 대한 가치체계가 존재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 인식의 잣대로 판단한다는 것은 단세포적인 사고이다. 10,000년 후의 사피엔스(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종(種)일 수도 있지만)가 볼 때 21세기의 인류는 아주 불행한 삶을 살다가 갔다고, 그런 비참한 생활을 어떻게 영위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저자가 확실히 이 책을 통하여 창조론자의 입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류는 진화의 산물로서 외연의 끝없는 확장이 어디까지인지 모른다는 것일 뿐이지, 신이 우주와 천지창조와 인간의 시시콜콜한 일에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가 행성의 대표선수이자 교만한 사피엔스에게 주는 섬뜩한 경고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을 발명할 때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끝날 것이라고. 비록 역사학자이지만 문이과 통섭형 발상의 씨날줄로 엮어 낸 그의 책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의 확장증보판 그 이상이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해 본다. 방금 40억년의 압축된 지구의 역사, 짧게는 7만년의 사피엔스 의 진화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기껏해야 1세기도 아닌 80~90년이다. 바닷물에 비하면 한 방울의 물과 같은 찰나의 시간을 산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땅위에 두 발로 서 있고 하늘을 쳐다 보는 자체가 경이롭기만 하다.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인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진화의 진격이 과연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도도한 이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있을 사피엔스에게 힘겨운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나는 고전을 주로 선호한다. 이유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 동안 확인된 검정필 도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출판된 책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게을러서이기도 하거니와 도서 선택에 있어서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이 시대에 만난 뜻밖의 책이다. 인문교양서로 읽어도 유익한 책일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깊은 잔상을 남기는 그런 여운이 있다. 한 명의 사피엔스가 또 다른 사피엔스들에게 보내는 강렬함이 있는 책, 한 번 만나보기를 추천한다. 그것도 아주 집중해서 말이다.

(경제전문가 이영철의 '북리뷰')

위대한 질문,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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