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42. Good morning? Mr. Holland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4.19 08:15 의견 5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경기도 교육청은 2024 중등 진로 전담 교사 선발에서 정량 평가 36점 중 26점에 해당하는 점수를 담임 또는 부장 교사 경력으로 배정했다. 이 경우, 만일 담임교사만 해서 만점을 받으려면 7.2년을 해야 한다. 현 선발 기준은 최소 7년 이상의 경력 교사 중에서 진로 교사를 뽑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진로 교사는 처음부터 임용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진로 교사는 자신의 원 교과목으로 일정 기간 학교생활을 한 경력을 갖고 있다. 나도 23년 동안은 윤리·도덕 과목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교감, 교장 선생님으로 승진하여 학교 관리자가 되지 않을 바엔 평교사가 바꿀 수 있는 업무 유형이 마땅치 않다. 전문 상담 교사는 아예 신규 임용으로 뽑고 있고, 보건교사나 영양교사 등도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른 스타일의 학교생활을 하고 싶은 선생님들은 진로 교사를 많이 희망하고 있다.

진로 교사가 배치되기 시작한 2011년도에는 교감 및 교장 승진을 희망하지만, 준비가 부족한 나머지 다른 방편으로 진로 교사를 신청한 중견 교사들이 많았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랬다. 그래서 진로 교사는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는 평교사 업무를 잠시 벗어나고픈 도피처 같은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일부 초창기 진로 교사들의 학교 내에서 평판이 좋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내 기억에도 진로 부장님들 중에 각종 공문이 오면 절묘하게 다른 부서로 ‘토스’한다 해서 ‘교사계의 김호철(대한민국 남자 배구 전설의 세터)’이란 별명으로 불린 선생님이 있었다.

초창기에는 교육청에서 총 570시간의 연수를 받고 진로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교육청 예산을 들여 연수를 제공했기에 발령 후 7년간은 명예퇴직도 불가했다. 일단 ‘되고 보자’는 마음으로 전과(轉科)하신 선생님들은 예상외의 업무 강도에 실망하셔도 맘 놓고 퇴직을 못 하셨으니 고충이 컸으리라 본다.

2017년부터 전국 12개 대학원에 진로 전문 상담학과를 설치하고 대학원 과정을 거친 교사들 가운데 진로 교사를 선발하도록 하였다. 이후엔 몇 년 이상 근무 조건은 없어졌다. 대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과 최근의 AI역량검사 및 전교직원 동료 평가까지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이 더해져 진로 교사가 일시적 충동으로 도전할 만한 영역은 결코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대학원 과정을 설치해서 마음가짐이 다른 진로 교사들이 현장에 많이 진출하였다.

윤리·도덕 교사 시절은 주로 고등학교에서 보냈는데 학교마다 연말이 되면 치열한 교육과정 협의회를 겪었다. 교원 수요 때문에 많은 갈등이 빚어지는 그 회의가 나는 몹시 싫었다. 어떤 과목에서 교사 수를 줄일지 결정하는 논쟁은 우리의 언어와 말이란 게 얼마나 덧없는 기준인지를 매번 느끼게 하는 비루한 경험이었다. 상충하는 교과목 선생님들의 주장은 각각 일리가 있으며 결론은 논리의 우위보다 누가 먼저 어쩔 수 없이 난처한 사정을 받아들이냐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탐구 과목 군에서 논쟁이 일어나면 나는 이상하게 우리 과의 주장을 잘 관철하지 못했다. 학교를 옮기며 ‘비록 교감은 못 되지만, T·O감은 잘된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했었다.

진로 교사는 통상 학교마다 1명이 배치되어 있다. 내신 시즌에는 관내 및 인근 관외 지역 정보를 진로 교사들끼리 나누고 옮길 학교를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더 이상 교육과정 협의회에서 동료 교사들끼리 얼굴 붉힐 일이 없어 그 점만으로도 만족한다.

진로 교사로서 그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만족스러운 순간은 또 있다. 바로 학생과 학부모님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진학 상담이다. 최근에 학부모 상담 주간 기간이라 하루에 대여섯 명의 학부모를 대면 또는 전화로 상담한다. 상담 신청한 학부모님들과 다음 상담 시간을 조정하는 통화까지 하면 하루에 열다섯 명 정도의 학부모님과 통화를 하게 된다. 때론 퇴근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전화통을 붙들고 학부모님과 대화를 이어간다. 어쩔 땐 이렇게 수다스러운 나 자신의 일면이 나이가 들면서 강해지는 여성 호르몬의 영향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강한 아줌마 성이 발현되기 때문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의 상담은, 자평하기에 전문가의 고결함과 오래된 TV프로 ‘아침 마당’의 대화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할 땐 주로 진학 상담을 했다. 아이들이 확보한 성적과 생기부 내용을 토대로 적합한 대학 및 학과를 찾아주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제자 사랑이란 외피를 입은 그 일의 건조함과 냉정함이 싫었다. 때론 선생님의 권유가 인생을 바꾸는 현명한 제안일 수 있었지만, 그런 의미 있는 상담보다는 어떻게든 한 단계라도 우위의 대학을 보낸 경우 고마운 인사치레를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소신 지원,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는 교육적 원칙은 현실에서 쉽게 무너졌다. 고3 담임 초창기에는 제안한 학교들 가운데 결정을 못 한 제자가 경쟁률을 보고 쓰겠다는 말에 버럭 화를 낸 적도 있다. 그런 말은 선생님 앞에선 하지 말라고, 너 혼자 집에서나 고민하라고 아이에게 면박을 줬다. 수년이 지나고 이젠 내가 그 말을 뱉는다. ‘이건 며칠 있다가 경쟁률 보고 결정하자’는 말을 제자에게 너무도 쉽게 하고 있다. 타협이 아니라 순응이고 좌절이다. 원치 않은 상담이어서 일까, 쉽게 목이 쉬었고, 때론 아이들과 모니터를 보며 자료를 찾다 꾸벅거리고 조는 경우도 있었다. 보람도 재미도 없었던 상담이었다.

지금은 그런 상담을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몸담은 학교의 특성상 특목·자사고나 영·과고 등의 고등학교 입시 상담 요청이 주를 이루는 건 대입 상담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나, 먼저 아이의 꿈과 미래를 위한 고민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이전 상담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 점에서 진로 교사의 역할이 의미가 있을 수 있으며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좀 더 근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학부모님과 학생들은 종종 정답이 없는 질문들로 진로 상담을 신청한다. 나도 알고, 그들도 안다. 대표적인 질문은 ‘저는(우리 애는) 특목·자사고랑 일반고 중 어디가 나을까요?’이다. 정답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고, 각 학생에게 맞는 학교를 딱 맞출 수 있다면 차라리 어디서 자리를 까는 편이 더 낫다.

그러나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수없이 대하면서 그 질문들이 나온 방향과 나아갈 방향을 찾고 조금이나마 객관적인 시각을 제시하며 여유를 권하면 학부모님이나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걸 느낀다. 여기엔 쌓여가는 상담 빈도와 경험이 제일 큰 무기요 자신감이다. 다른 방법보다 이게 최선이다. 어쩔 수 없다. 좋은 고등학교를 보내기 위해 준비한 날들이 소중해서 그 한복판에서 극도의 불안과 긴장을 보이는 학부모가 있다면 잠깐 물러나서 이런 고민이 얼마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고행으로만 볼 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건 좋은 제안일 수 있다. 말이 ‘아’와 ‘어’가 다르듯, 평범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따뜻하고 공감 어린 말투와 시선을 보내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아이가 어떤 직업 흥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저 유명한 홀랜드(John L. Holland) 박사의 6가지 직업 흥미 유형 검사 결과를 활용한다. 1973년 ‘Making Vocational Choice’를 출판하며 등장한 이래로 지금까지 진로 검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검사이다. 미국에서 온 너무 오래된 이 이론에 다소 식상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활발하게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그 효용성과 안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 대표적인 6가지 성격 흥미 유형은 앞 글자를 따서 RIASEC으로 불린다. 이점은 많은 선생님들이 익히 알고 있다.

나의 경우는 이 여섯 가지 흥미 유형이 만들어내는 육각형 모양에서 기존 이론이 제시하는 정형화 된 설명을 어떻게 요즘 눈높이와 현실에 맞춰 설명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일상의 사례로, 쉽고 익숙한 주변 상황을 접목해 설명하면 상담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RIASEC은 직업 흥미 유형의 6가지 현실형(Realistic), 탐구형(Investigative), 예술형(Artistic), 사회형(Social), 진취형(Enterprising), 관습형(Conventional)의 앞 글자들이다.

각각의 흥미 유형 점수도 중요하지만, 그 점수들을 연결해서 만든 육각형의 모양에 관한 해석도 중요하다. 전체적인 사이즈도 함께 고려해야 하고 흥미 유형이 잘 분화되었는지, 배척하진 않는지 등도 살펴야 한다. 간단하게나마 하나씩 살펴보자.

현실형이 높은 학생들은 어떤 특징을 보일까? 그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취를 중시한다, 활동적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신체활동에 적극성을 보인다. 체험 활동에도 활발하다. 이런 친구들이 예술형까지 높으면 그런 성향은 더욱 강렬할 수 있다.

반대로 현실형이 낮고 탐구형이 높은 친구가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론과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학업 성취가 높을 수 있다. 단순히 정답을 외우려는 것보단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자 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가 관습형까지 강하고 예술형은 낮으면 대체로 안정감 있고 시스템이 잘 구축된 조직에서 일하기를 좋아한다. “가족 여행을 갈 때 데리고 다니기 힘드시죠?”라고 질문한다. 또는 “캠핑이나 역동적인 체험을 하는 여행보단 리조트나 호텔 등에서 차분하게 쉬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동의율이 높다. 연구원 등의 직종을 추천하면 역시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

진취형은 기업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게 높으면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소신이 있다고 본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하는 걸 싫어한다. 이 친구들은 놀자고 한 게임이라도 승부는 봐야 직성이 풀린다. 학급 임원 선출에도 자주 나선다. 만일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품고 있다. 그걸 건드려 주면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그 옆에 사회형이 높고 진취형이 낮은 친구들은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떠냐, 우리가 함께 즐긴다는 게 중요하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표적인 약 진취형, 강 사회형이다. 그래서 교감은 힘들어도 T·O감은 잘되는지 모른다.

이 밖에도 숫자나 자료를 다루기에 편안해하는 관습형과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형을 비교한다. 관습형이 높다면 안정적인 조직 활동, 예측 가능한 일상의 업무, 관공서나 공공 기관의 공무원 이미지를 떠올리고, 반대로 예술형이 높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뻔한 일상보다는 뭔가 새롭고 변화가 있는 일들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예상한다. 관습형이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성향이 높다면, 예술형은 반대로 집단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성향이 크다. 예술형이 유독 높은 아이에게 “주로 자기 방문을 잠그는 성향이 있어요”라면 동의할 경우가 많다.

모든 심리 검사가 그렇듯 홀랜드 직업 흥미 검사가 완전할 순 없다. 이건 전적으로 상담 시 참고할 대화의 꺼리이다. 아이의 특성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학부모와 아이가 조금 더 편한 상태로 다가오게 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진로·진학 상담의 성공 방정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함께 나누는 대화들 속에 수많은 변수들이 어우러져 공감과 이해의 장을 열어 가면 만족할 만한 상담이라 할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안에서건, 밖에서건 만족할 만한 일이 흔치 않은 요즘이기에 더욱 그렇다.

출처 BIGPOTS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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