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적 조건을 너의 마음으로 하여 생명적 춤을 춰봐!’

파문

정준일

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행위일 뿐입니다

나는 춤추는 누군가가 아니라

다만 춤일 뿐입니다

빗방울 떨어지는 곳에서

내 생명은 피어

가능한 한 가장 큰 생명으로 피어

최대의 순간에 소멸하는

나는 춤입니다

내 생이 빛나던 자리에는

이내 다른 춤들이 생성하고

또 다른 생애들이 소멸합니다

길어야 1초의 시간이지만

나는 나를 나답게 빛내고

다른 춤사위에 자리를 내어줍니다

수 없는 춤사위들이 명멸하는

그곳에 나를 기억하는 이 없겠지만

나는 다만

가능한 최대의 행위로 즐겁습니다

나는 행복한 노랫가락이었습니다

선언, “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행위일 뿐입니다.” 놀랍습니다. 자기동일성이나 실체(實體), 자성(自性) 등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을 찾아 살찌우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가능한 한 동일성을 지켜내고 추구하려는 문화 풍토 안에서 사건적이며 생성적이고 과정적인 세계관을 선언한 것입니다. “나는 춤추는 누군가가 아니라/ 다만 춤일 뿐입니다”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그 연기의 순간에 스며 있는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하여 파문(波紋)으로서의 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모든 인간 역시 늘 어떤 행위로만 존재합니다. 다만 그가 인연 조건 속에서 동일성의 자기 존재를 추구하느냐 아니면 차이나는 자기를 추구하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시인은 지금 특정한 존재로서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춤이 아니라 ‘다른 생성의 존재’로 변해가는 춤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빗방울 떨어지는 곳에서/ 내 생명은 피어/ 가능한 한 가장 큰 생명으로 피어/ 최대의 순간에 소멸하는/ 나는 춤”이라고 합니다. 파문의 생명이 시작되는 곳은 빗방울이 떨어진 자리이고 그 낙하의 힘으로 퍼져나갑니다. 퍼져 나아감에 있어 생명적 본능은 “가능한 한 가장 큰 생명으로” 피는 것입니다. 낙하의 힘이 얼마였든, 떨어진 곳의 조건이 어떠하든 오직 ‘더 큰’ 힘을 자기로 사는 것,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대의 순간에 소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다 사는 것에서 사라지는 “춤입니다”. 변치 않는 나라는 것이 있어 춤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큰 생명으로 피어나는 춤으로서의 나인 것입니다. 이때 나를 구성하는 최고의 윤리 도덕이란 ‘가장 큰 생명으로’ 피는 것 그 자체입니다. 만약 모두가 이렇게 이 세상에 오는 것이라면 모두가 그래야 합니다.

이것이 그 연기적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생성적 존재 방식입니다. “내 생이 빛나던 자리에는/ 이내 다른 춤들이 생성하고/ 또 다른 생애들이 소멸합니다/ 길어야 1초의 시간”입니다. 그 1초의 시간 안에 나는 생성으로 있고, 그 생성 중에 다른 춤과 함께 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지만 ‘가장 큰 생명의 춤’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소멸이라고 해도 허무하지 않습니다. 아니, 허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최대의 순간”에 이어 다른 연기적 조건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삶은 “나를 나답게 빛내고”가 전부입니다. 그것이 전부일 때 “다른 춤사위에 자리를 내어” 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리를 내어준다는 말도 부적절한 말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리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성적 존재란 늘 함께 변해가고, 내어주는 것도 차지하는 것도 나의 증식이나 손실이 아니라 변해가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성의 모든 순간이 아름다움입니다. 비록 1초의 시간이지만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가 다 나를 구성하고 피어나게 하는 생명적 능력의 발산으로써 기쁨입니다. 오히려 변화할 수 없는 것이 생성의 중단이고 죽음이기에 슬픔이고 괴로움입니다. 우리는 변화를 의욕해야만 살 수 있는 파문이고 춤이고 생성인 존재입니다. “수 없는 춤사위들이 명멸하는/ 그곳에 나를 기억하는 이 없겠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나는 다만/ 가능한 최대의 행위로 즐겁습니다/ 나는 행복한 노랫가락이었습니다.”

지금 나를 보며 저 빗방울 파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를 붙들어 매고 있는 것들을 다 놓고, 연기적 조건을 너의 마음으로 하여 생명적 춤을 춰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