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교사가 되고 초창기에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지도하다 이른바 ‘찍강’을 하기도 했다. 올해 수능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나올 것 같다며 나름의 촉을 발휘하기도 했고 문제 내용까지 뽑아서 알려주었다. 신통하게도 몇 개를 맞추면 아이들이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 잠시나마 족집게 강사가 된 기분이었다.
수시모집과 학생부 종합이 생기면서 학생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무엇을 준비하면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느 대학도 ‘우리가 이렇게 선발했습니다’라고 그 방법을 100% 공개하는 일이 없기에 현장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이러이러한 학생들이 결과가 이렇게 되었네요’하고 귀납적으로 자료들을 추려서 학생 진학지도의 방편으로 삼았다. 많은 고3 담임 선생님들과 진로 전담 교사들이 고생해서 만든 자료들이 쌓여갔다. 지금도 한 개인의 공력이라기엔 엄청난 노고를 느낄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나온다. 선생님 중에는 학구적이고 분석적인 분들이 많다는 걸 자주 느낀다.
대학 모집 요강들도 너무 다양해서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 전국 진학지도 협의회라는 모임의 주도하에 진학지도의 여러 정보 들을 정리하고 나누는 활동이 활발해졌고 그중 일부 선생님들이 수시모집의 명강사로 저술과 강의의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마다 수시모집 요강이 완성되고 여름 방학이 되기 전 주말, 전국에서 고3 담임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선생님의 연수를 듣는 순간이다. 지방에서 버스까지 대절해 수천 명의 선생님이 모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특별한 대학 기념관이 필요한 큰 행사다. 원래 공연 관람 용도로 만들어진 좌석이라 천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무릎에 놓고 줄을 쳐가며 듣기에 너무도 비좁고 불편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오전부터 저녁 예닐곱 시까지 수시모집에 대한 진학 정보를 들으며 정말 못 할 짓이구나 싶었다.
정보 사회에 걸맞게 생중계를 하든 녹화를 하든 각자 편한 공간에서 보게 할 수도 있을 텐데 행사의 억지스러움에 불만이 컸었다. 그 강의 명칭이 ‘수시모집 대박나고 대학간다(줄여서 수박먹고 대학간다)’이다. 고3 담임을 경험해 본 선생님들은 안다. 3학년의 학생 지도는 주로 입시에 치우쳐있고 어떨 땐 상담하며 너무 기계적으로 아이와 대화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도 그런 순간엔 많이 힘들었다. 아이가 만들어 놓은 점수와 활동 결과들을 정리하여 최선의 대학을 찾아봐 주는 정도의 역할이 때론 답답하고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른바 소신 지원을 강조했지만 점차 경쟁률을 체크하고 틈새를 찾아다니는 나를 발견하면서 변하는 내 모습에 안타까웠다. 한 번은 우리 학년에서 한 여학생이 자기 성적보다 몇 단계나 높은 대학에 들어간 일이 있다. 당시에 논술 전형으로 태권도학과에 합격한 것이다. 태권도 2단(품) 이상의 단증 소지자가 자격 기준이었고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국어 또는 영어가 3등급 이상이었다. 그 여학생은 평소에 태권도학과를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 얘기로는 태권도협회 같은 곳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해 논술 전형으로도 선발한다고 했다. 한참 부족한 성적으로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학생과 부모님의 기쁨은 말해 뭐 하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춘 제자에게 최선의 학교를 찾아준 담임 선생님의 정보력이 빛난다고 축하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게 옳은 일일까라는 물음은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수능 선택과목에서 윤리(생활과윤리) 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수년 전에는 사회과목 중에서 내신에도 반영이 안 되고 수능 선택도 적은 과목이라 특히 3학년 교실에서는 학생들을 지도할 때 어려움이 컸다(나는 진로 교사 이전에 윤리 교사였다). 학생들이 수업을 잘 안 들으려 했고 다른 과목을 공부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때 국·영·수 등 주요 과목 선생님들이라면 이런 고민은 안 하겠구나 싶어 부러웠다. 당장 대입에 필요가 없는 과목에 아이들의 동기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많은 고민 속에서 수업을 준비했었다. 시험이 없다면, 대학입시가 없다면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진로 교사가 되면서 알았다. 오랜만에 중학교 1학년을 지도하며 성적이 산출 안 되는 자유학년제 속에서 아이들은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수업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본다. 진로 교과 시간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과 시간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신기하게도 교과 성적이 산출되는 2학년부터 수업 참여와 열정이 식는 분위기다. 아니면 그것과 상관없이 학년이 높아가면서 진학에 대한 고민이 커서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학교의 경우는 1학기에는 1학년에, 2학기에는 3학년에 진로 수업이 배치되어 있다. 통상 1학년을 1년간 지도하는 학교들이 많은데 향후 진로 연계 학기가 확대되는 측면에서 우리 학교처럼 가르치는 학교가 많아지는 추세이다. 문제는 2학기에 만나는 3학년 아이들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3학년 아이들을 만나면서 진로 교육의 기본 교육 과정 내용을 수업했더니 학생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나를 알아가는 노력, 직업 세계 탐구, 대인관계 및 원만한 의사소통 등의 교육 과정 내용을 이미 중학교 1학년 때 경험해서일 것이다. 게다가 성적에 안 들어가는 과목이라 수업 시간에 다른 과목을 꺼내 놓은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수업 내용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진로 교육의 측면에서 중3 2학기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내린 결론은 실질적인 고입의 정보와 훗날 이어질 대학의 계열과 학과 정보, 그리고 구체적인 직업 세계의 정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공부하는 방법에 관한 학습 코칭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한 종합 대학의 모집 요강에서 학과별 모집인원 표를 보여주었다. 그중에 자신에게 편할 것 같거나 좋아하는 학과를 있는 대로 표시하게 했다.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무것도 관심 가는 게 없다고 말한다. 역발상을 했다. 그렇다면 도저히 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학과를 지워 보세요라고. 그리고 지우기를 계속하다가 결국 남은 학과가 그나마 현재 자신과 가까운 분야일 거라고. 진로 교육을 하면서 생긴 여유는 학생들의 불평도 모두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고 그러면 한 발짝 떨어져서 해결책을 떠올리기가 쉬워졌다. 역발상 활용은 더 있다. 적성 검사 점수가 높은데 성적이 안 좋다면 좋은 역량을 강조하며 분발하라고 독려하고, 검사 점수가 낮은데도 성적이 좋다면 열심히 공부한 노력에 격려를 해주는 방식 등이다.
그다음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학의 학과별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전공 소개와 졸업 후 진로 그리고 그 학과의 교육 과정을 보고 50학점 정도 들을 과목을 작성해 보는 활동을 한다. 아이들은 마치 자신이 대학교 1학년이나 된 것처럼 몰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학과의 정보도 자세히 알게 되어 보람 있었다는 소감을 밝힌다. 잘한 학생들에게는 일일이 코멘트도 달아준다. 수업 참여도가 늘어나고 상담 신청하는 학생들이 많아진다. 그러면 학기 운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봐도 좋다. 꼭 대학에 가야 해서 하는 활동이 아님을 말하며 대학의 학과가 현재 우리 사회의 진로 분야를 대표하고 있기에 자세히 살펴보고 자신의 진로 확립에 도움을 받자는 취지임을 설명한다. 이어지는 활동으로는 주변 고등학교 교육 과정 살펴보기, 학교알리미로 고등학교 특성 파악하고 비교하기, 고등학교 선택과목 특징 파악하기, 고입 원서 작성과 방법 알아보기, 자신의 학습 유형과 방법 파악하기 등이 있다.
변하는 학생들의 요구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행복한 수업과 학교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수업과 학교생활은 생물과도 같다. 올해 만나는 3학년 아이들은 어떨까? 걱정과 기대로 만난 아이들과 함께 도전하고, 그들을 받아주며,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서 오늘도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