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의 교육 단상, 내란사태로 다시 시험대 오른 교장들
- 교장은 공공의 적인가 ⑧
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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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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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고 산다. 일찍이 10월 유신과 12.12 군사 반란 치하에서 살아는 봤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정적 제거를 위해서 자기 고등학교 후배 군인들을 동원하여 일으킨 친위 쿠데타라고 하는 내란 치하에서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과거 엄혹한 시절이라면 어둠 속에서 아니면 벙커 속에서 숨어서 몰래 할 수 있었던 일을 무슨 야구 중계 보듯 계엄군의 작전과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대치상황을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하며 감지덕지해야 할까?
‘12.3 내란’ 이후 많은 국민들이 밤잠을 설치고 흥분과 분노와 우울감 속에 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장군과 최고위 경찰 등 소위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맨얼굴을 매일매일 아주 가까이서 낱낱이 보고 있는 것은 놀라움이라기보다는 가슴을 찢는 비통의 학습장이다. 수틀리면 합법, 비합법 모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반대파를 괴롭히고 항상 격노하는 감정 불안상태의 최고 지도자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옳지 않은 것을, 그렇게 하면 나라가 잘못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통령에게 제대로 충언 한마디 하지 못하는 국무위원들의 무기력한 모습도 보고 있다. 불법한 계획을 도모하고 무모한 명령을 예하 부대와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군인을 실황중계로 보고 있다. 군인의 총칼로 민의의 전당이요 자신들의 집무실이 침탈되는 내란의 현장을 제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서도 혹시 대통령의 유고가 자신들의 자리와 권력 유지에 나쁜 영향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불법에 눈을 감고 대통령을 옹호하기에 바쁜 국회의원들의 민낯을 정면으로 보고 있다. 권력 공백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여 떡고물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떡시루를 홀로 독차지할까 머리를 짜내는 얍삭한 인간도 목격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요, 최고로 출세한 자들이 보여주는 리얼한 모습들이다.
저들을 보면서 우리 학교의 교장들은 어떤 모습일까 발칙하고 도발적인 생각이 들었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직언을 들으면 참지 못하고 뻑 하면 격노하는 무데뽀형 교장은 없는가? 옳고 그름의 판단은 유보하면서 나에게 손해만 없으면 상급관청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무한 긍정과 인내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신형 교장은 없을까? 내란의 토탈 플랜을 짜고 자기 부대의 인원을 동원했음에도 계엄의 불법성을 인지한 부하들이 정작 커피나 라면을 사 먹으면서 태업을 부리는 병사들을 두고 자기 말을 신뢰하고 명령에 따를 것으로 믿었던 어떤 멍청한 사령관처럼, 학교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에 허우적거리는 헛똑똑이 교장은 없을까? 백척간두의 국가 위급 상황에서도 주인 없는 권력을 제 쪽으로 돌려놓으려고 애쓰는 잔머리형 교장은 없을까?
이러한 무도하고 비상식적인 상황에서의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내가 하는 상상이 무모하고 현실성 없는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이 숨겨진 인간의 본래 진면목일 수 있다. 평상적인 모습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 위급한 상황에서 본심이 나타날 수 있다. 교장에 대한 이 글을 처음 쓸 때가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부터이고, 교사 사망에 대한 교장의 비겁한 면피성 행정행위에 대한 반성과 분석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국가비상상황에서 나타나는 지도자의 얼굴을 반면교사로 삼아 교장들이 보여주는 지도성의 유형을 유추하고 분석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비상상황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아직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 국가 최고 지도자의 불법과 일탈로 비롯된 국가 위기상황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도시마다 거리마다 항의 대열과 촛불 시위가 번지고 있다. 전국적인 상황이다. 여기저기에서 교수와 작가, 예술가, 퇴직 교원들에 이어 현직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터지고 있다. 하물며 인천, 세종에서는 고등학생들의 시국선언이 발표되었다. 터진 봇물을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12.3 내란’의 여파가 곧 학교에도 불어 닥칠 것이다. 유동적이긴 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이 교사들과 학생들의 단체행동과 시국선언을 막으려고 덤벼들 것이다. 이런 사태에 직면하게 되면 교장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행정을 할 것인가? 상급관청의 요구대로 징계한다고 앵무새처럼 떠들 것인가? 무소신으로 눈치나 보고 시간의 흐름을 지켜나 보는 좋은 소리 듣는 교장이 될 것인가? 부당한 지시임을 판단하지 못하고 부하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책임은 내게 있으니 부하들의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 본인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겠다고 나오는 어떤 군인처럼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휘몰아치는 역사적 흐름과 굽이를 미래세대를 위한 정치교육의 학습장으로 활용하여 교육적 교훈을 끌어내는, 판을 크게 읽고 바른 길을 인도하는 교장이 될 것인가?(전종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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