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임화(5)/ 김상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2.12.05 08:44 | 최종 수정 2022.12.05 08:49 의견 0

2, 일연

잘 알다시피, 고려의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유명론의 탁월한 계승자입니다. 하나의 ‘개시disclose’로 유명론은 세계의 감춰진 비밀을 털어놓는 이야기의 세계입니다. 일연이 ‘단군 신화’와 향가 14수를 비롯 ‘수로부인’ 등 권력에 비중을 둔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달리 일상생활에 깃든 민중들의 고유하먼서도 기이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주목한 것도 여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자, 여기 <이솝 우화>보다 더 재미있는 우리 이야기의 원형 서사를 보것습니다.

신라 제 48대 경문왕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왕후와 나인들은 모두 알지 모했으나 오직 관을 만드는 복두장이 한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에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죽으려 할 때 도림사의 대숲 속의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나무를 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그 후 바람만 불먼 댓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왕은 이 소리를 싫어하여 이에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그 소리는 "우리 임금님 귀가 기다랗다"고만 했다.

이것은 <삼국유사> 제 2권 '기이편'에 실려 있는 짧은 이야기 한 토막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이야기지만 이 작은 이야기 속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빽빽한 석류알처럼 박혀 있습니다. 서사는 하나의 욕망이고 꿈이고 의지의 세계입니다.

우선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뭔가를 알고 싶은 근질근질한 이야기라는 서사의 세계가 도대체가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세계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죽음으로써만이 능히 제어할 수 있는 본능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왕으로 대표되는 권력자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싶어하고, 복두장이로 상징되는 피권력자는 권력자의 약점을 알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이 짧은 서사가 팽팽한 긴장으로 넘치고 있는 것도 사실 이것 때문입니다. 즉 왕은 자신의 약점을 은폐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고, 복두장이는 이 권력자의 약점을 탈은폐시키려는 기도try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왕은 이 소리를 싫어하여 이에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그 소리는 "우리 임금님 귀가 기다랗다"고만 했다. 이 대목을 주목해 보건대, 일단 왕으로 대표되고 있는 권력자가 승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은 왜 복두장이의 소리를, 정확히는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싫어했을까요. 그러먼서 "우리 임금님의 귀가 기다랗다"는 말은 왜 용납했을까요.

가, 우리 임금님의 귀가 기다랗다
나,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다

여기, 왜 하나는 수용되고, 다른 하나는 거부되었을까. 바로 여기에 서사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사회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먼 제 48대 경문왕은 통일신라 하대의 임금으로, 그는 성대盛大를 지나 내분이 일고 균열이 일던 시기의 통치자였습니다. 곧 나라의 통어가 어렵던 시기의 지도자였습니다. 여기, 그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는 것은 임금이 마치 당나귀처럼 고집이 세어져서 신하들의 충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풍자입니다. 과연 그 이후로 처용(헌강왕)이 나타나 풍속이 문란해지고 견훤, 궁예 등 지방호족이 득세하고 선종禪宗이 유행하였으며, 무능한 진성여왕이 나오고 얼마 안 가 통일신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것은 복두장이, 대나무로 상징되는 백성들의 권력에 대한 간접적인 풍자요 주체적인 비판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서사, 그러니까 이야기의 세계가 사실과 다른 차원의 세계형식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사실의 세계가 재현된 ‘모방mimesis’의 세계이고 평면의, 이미지의 세계라먼, 서사의 세계는 사실의 재구이자 굴절된 ‘서사diegesis’ 세계임을, 그리하여 사실을 가공하여 만들어진 서사의, 개념의 세계는 대상 세계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명론적 개체로서의 서사의 세계는 은폐된 세계를 탈은폐시키는 서사 폭탄, 언어의 혁명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임금님의 귀가 기다랐다'는 묘사(소)가 산수유나무로 상징되는 노예들이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마는 종놈의 수사학을 보여준다먼, 그러니까 종놈의 수사학이 묘사라는 것은 대상에, 동일성에 사로잡혀 있는 조화의 언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서사(소)는 대나무로 상징되는 민중들의 언어가 대상에 비판적 거리를 지닌 주체적인 차이의 언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대체 '누구는 무엇이다'는 서사적 기술이 주체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은' 또는 '누구는' 하는 세계가 벌써 대상에 대한 거리를 두고 있는 주인의, 주체의, 차이의 분류학에 기초하고 있는 심판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서사입니다. 그러니까 묘사가 대상에 중심이 가 있는 구심적인 시의, 전체의, 동일성의, 실재론의 세계라먼, 서사는 그 중심 대상에서 벗어나 이야기 주체인 인간으로 시점 이동하는 원심적인 소설의, 개별의, 차이의, 유명론의 세계형식입니다.

서구 비평계의 거인 벤야민(‘프란츠 카프카’)은 “<오디세이아>는 그야말로 신화와 동화를 갈라놓는 문턱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동화는 요정들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인간이 ‘거대한’ 자연(신)을 극복하고 ‘작은’ 요정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연(신)이 거대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서양 최초의 소설이라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항해사 오디세우스가 마주한 것은 거대한 자연신 세이렌siren이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그것은 사실 ‘물보라와 큰 너울이고, 바다가 노호하는 큰 소리’라는 유명론적 사실에 불과하다는 객관적인 인식에 도달한 것으로, 신과도 같은 영웅적 권력자는 거대하고 숭고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신이라는 것이 가짜fakes이고 권력자도 별거 아니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실재의 허구를 쏘아보는 날카로운 유명론의 시선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풍자기능으로서의 주체적 성격을 지닌 유명론으로서의 서사의 힘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맹목적 복창의 세계에서 자발적인 선창의 세계로, '대상'에서 '인간'으로, 그러니 서사(학)은 주인의 학문인 것입니다. 공자를 비롯 아리스토텔레스, 다산 등 대체로 당대의 권력에 붙어먹던 최고의 정치엘리트들이 왜 한결같이 시('가')를 옹호하고 소설('나’)의, 이야기의, 서사의 세계에 대해 '적의hostility'를 드러내고 있는지, 그것은 조너선 컬러의 말대로,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상에 대해 가르치고, 세상이 어티케 움직이는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망매가祭亡妹歌’ 등 통일신라(<삼국유사> 14수)와 고려(<균여전> 11수) 조의 우리의 노래鄕歌가 주로 10구체 형식을 지니며 하나의 이야기시로서 산문화 경향을 띠고 있는 것도 이미지의 세계에서 개념의 세계로 전이되듯, 실재론의, 교종의 세계에서 유명론의, 선종의 세계로, 인간 해방의 세계로 건너오는 중요한 형식적 표지였던 것으로, 왜냐하먼 산문은 세계의 개진이기 때문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삼국유사] 권5 표지(문화재청)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