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돌참게 / 최명옥

이정철 승인 2022.09.02 15:49 | 최종 수정 2022.09.02 15:54 의견 0

옥돌 참게 / 최명옥

붉은 밤이 뚝뚝 떨어질 때

나를 찾으세요

황금빛 볏단이 골골 마다 쌓이면

나를 찾으세요

어디서 불어 오는지

등에 찬바람 스치면

나를 찾으세요

바다로 가다가 지치면

돌을 지붕 삼아 살지 모르니

어이 나를 찾으세요

임금님도 찾던 귀한 몸이니

가을밥상에 나를 부르세요

간장 듬뿍 품고 맛나가 되어

찬장 접시 주인이 되게요

날 가볍게 다루지 말고

끓이고 식히길 서너번

정성 관심 열두 밤은 지나야 되요

국 간보다 세배 간이 넘어야

간장게장이 되요

그리구요

알 찬 참게 소 한마리 와도

안 바꾼다는 속담 아세요

참게

<옥돌참게>

한자어로는 해(蟹) 또는 천해(川蟹)라 하는데, 해는 동남참게를 가리키기도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참게가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의 토산물로 소개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는 ‘참궤’라 하여 형태와 생태 및 잡는 법이 적혀 있다. 《전어지》에도 참게 잡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규합총서》에는 게의 보관법과 게젓 담그는 법, 굽는 법, 게찜요리 등이 나온다.

갑각 넓이가 7㎝ 내외인 비교적 큰 게에 속하는 참게는 바다에 가까운 민물에 살다가 가을에 바다로 나가 산란한 뒤 이듬해 봄이 되면 새끼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와 강변의 논이나 논두렁에 구멍을 파고 산다.알을 낳기 위해 바다로 내려갈 때 강에 그물을 쳐서 잡거나 가을걷이가 끝난 후 밤에 횃불을 켜고 논에서 손으로 잡았다.남해와 동해로 흐르는 강변의 참게를 ''동남참게'', 서해로 흐르는 강변의 참게는 그냥 ''참게''라고 분류하지만 동남참게보다는 참게가 더 크고 맛도 일품으로 꼽혔다.특히 임진강가의 파주(坡州)참게는 예부터 유명했다.그중에서도 지금의 월롱면 위전리 옥돌냇가에서 잡히는 참게는 ''옥돌참게''라고 해서 게장을 만들어 임금의 수라상에만 올렸다고 한다.

참게 일러스트

<옥돌참게 이야기>

옛날 중국 산둥성 청주사람 사공요(史公繇)가 명나라 개국공신 예부상서로 있을 당시 소인들의 모함을 받아 명나라 태조의 조서를 가지고 고려 공민왕 때 우리 나라로 망명하여 월롱면 덕은리에서 살다 죽으니 중국에서 천자가 옥돌비를 하사하고 비를 세웠다. 그 후 우리나라가 혼란할 때 자손들이 집 앞 개울에 옥돌비를 버렸다. 후에 옥돌을 버린 개울이라 불린 옥돌내 개울에는 매년 봄이면 황해바다에서 어린 참게가 임진강을 타고 올라와 광탄 여울을 지나 소령원이 있는 영장리까지 모래와 자갈밭을 오르내린다. 모래와 자갈밭을 오르내리는 동안 옥돌참게의 다리에 털이 전부 없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이 옥돌참게의 특징이 되기도 한다.

《최명옥》

- 시인, 한국예술문화명인(명인제20-16-0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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