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채광석 시인 35주기 추모제 개최

안면도 출신 채광석 시인은 '민족문학의 독전관'으로 반독재투쟁에 청춘을 바친 민주화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

하무뭇 승인 2022.07.10 12:19 의견 0

채광석 시인 제35주기 추모제가 오는 12일 국립5.18민주묘지 2묘원 고인의 묘소에서 열린다.
채광석 선생(1948.7.11~ 1987.7.12)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과 1980년대 민족문학운동을 선도한 '민족문학의 독전관'으로 반독재투쟁에 청춘을 바친 민주화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

앞서 고인은 지난 6월 10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훈 받았다. 채광석 시인 제35주기추모제준비 위원회 한국작가회의, 광주전남작가회의는 이날 추모제와 함께 '고 채광석 시인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식'도 거행한다.

채광석은 1948년 7월 11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양지말에서 아버지 채규송, 어머니 이우덕 슬하에 4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안면도 창기초등학교, 안면중학교를 거쳐 1963년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대전고 2학년 때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

1968년 3월, 서울대 사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하여, 1학년 때부터 이념 써클에 가입해 활동했고,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창작을 시작했습니다. 1971년 4학년 때 교련반대 시위에 앞장섰고, 10월 16일, 박정희 정권이 유신쿠데타의 전초전으로 ‘위수령’을 발동했을 대 그 다음날 안면도 고향집에서 체포돼 이태복 심지연 유상덕 등과 강제입영 조치를 당했다. 강원도 최전방 원통에서 군 복무할 때 수차례의 신상조사와 중앙 정보부의 재수사조치를 당했고, 탈장과 하혈 등 건강악화에도 후송되지 못하고, 31개월 동안 군복무 후 1974년 5월 30일, 만기 제대하여 가을학기에 복학했다.

1975년 5월 22일, 서울대생 1천여 명이 관악캠퍼스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김상진 열사 장례식’을 거행한 후 박정희 긴급조치 9호의 철폐를 외친 대규모 시위, 이른바 ‘오둘둘(5.22) 시위’로 서울대생 200여 명이 연행되었습니다. 이때 채광석은 유상덕과 함께 오둘둘 시위 사범대 책임자로 활동했는데, 유영표 이호웅 박성규 천희상 김도연 김정환 장만철 정병문 김동식 박부권 등 68명이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구속되었고, 그 중 22명이 검찰에 기소되었습니다. ‘오둘둘 사건’으로 당시 서산군 운산면장으로 재직하던 부친이 정보부의 압력으로 면직되었다. 이후 만 2년 1개월간 수형생활을 한 후 1977년 6월 24일, 공주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감옥에서 수형생활 중 수많은 옥중시를 창작했다. 아울러 애인 강정숙에게 180여 통의 연서를 써서 보냈는데 이것은 1981년, 옥중서간집-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대학가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1978년 7월, 신협의 공제부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심지연과 공역으로 파울로 프레이리의 저서 『교육과 의식화』를 출간했으며, 이듬해 1979년 봄, 강정숙과 이화여대 중강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서울대에 복학했으나 5월 17일 밤, 전두환 신군부의 이른바 ‘5·17쿠데타’로 피검돼 서울대 학생운동의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돼 40여 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구속된 지 3개월만인 8월 18일, 기소유예 조치로 석방되었다. 훗날 이 일로 인해 <5.18민주유공자>로 선정되었다.

1981년 9월, ‘신협’의 홍보과장으로 복직했습니다. 김도연, 홍일선, 정규화, 황지우, 박승옥, 나종영, 김정환, 김사인, 선경식, 김용택 등과 『시와경제』 동인으로 참가해 1980년대 ‘시의 시대’ 서막을 알렸고, 1983년 6월, 『시와경제』동인지 제2집 발간을 주도하며 박노해, 조성우를 신인으로 발굴했다.

1983년 2월,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김정환의 장편연작시 『황색예수전』의 발문을 썼고, 3월, 백낙청·염무웅 편으로 창비에서 발행된 『한국문학의 현단계2』에 평론 「부끄러움과 힘의 부재」를 신인작품으로 발표,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이어 5월, 조태일 시인이 주재하던 시(詩) 전문무크『시인』 제1집에 「빈대가 전한 기쁜 소식」등의 작품으로, 시인으로 데뷔함으로써 한국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해 12월, 전두환 정권의 학원자율화조치로 네 번째 복학허가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1984년 4월, 김종철 김학민 등과 <민문협>의 창립에 앞장섰고, 9월, <민민협>의 창립에 참여, 실행위원으로 활동했다. 풀빛출판사 나병식 대표와 함께 ‘풀빛판화시선’을 기획 출간하여 문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84년 가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의 재건작업에 전력하고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후 <시와경제> <오월시> <분단시대> <삶의문학> 등 지역동인들과 함께 자실 재창립 준비모임을 주도했다. 10월부터 3개월간 실천문학사에서 ‘자실’ 개편 준비소위와 확대준비회의를 이끌면서 1980년 5월 이후 활동이 중지된 자실의 재건 작업에 전력을 다했다. 마침내 12월 19일 오후 6시,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84회의>와 제1회 <민족문학의 밤>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후 자실의 초대 총무간사를 맡아 이 단체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1985년 2월 5일, 종로2가에서 열릴 예정이던 ‘민주제도 쟁취국민대회’ 관련으로 종로서에 연행되어 현준만 회원과 함께 구류 10일 처분을 받았는데, 이는 자실 재창립 이후 최초의 인신 탄압 사례로 기록되었다. 경찰의 압수와 판금조치에도 불구하고, 1985년 2월부터 이삭출판사에서 문고판 ‘자실’ 기관지가 연속 출간했고, 3월, 문익환 목사가 이끄는 <민통련>이 창립되자 이 조직의 문화예술분과위원장과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7월에 사회문화론집으로 『물길처럼 불길처럼』를 출간했으며, 11월, ‘자실’ 총회에서 천승세, 박태순, 이문구, 양성우, 이시영, 김정환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임돼 활동했다. 12월, 풀빛판화시집 제14권으로 첫시집 『밧줄을 타며』를 출간했다.

1987년 풀빛출판사 나병식 대표가 구속되자 이 출판사의 편집주간 및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자실’ 주최로 4월부터 개최된 <시민을 위한 민족문학교실>을 이끌었다. 4월 29일, <4.13 호헌조치에 대한 문학인 193인의 견해>라는 기명 성명 발표를 주도하여 6월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7월 10일, 풀빛에서 펴낸 15인 신작시집 『이 어둠의 끝은』 출간과 관련 중앙일보의 취재 요청으로 이 시집에 참여한 여러 시인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다음날 7월 11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민주시민대동제- 민요한마당>의 공연을 관람한 후 서울 마포 아현동 민요연구회 사무실에서 뒤풀이를 갖고서 다음날 7월 12일 새벽 2시경 귀가 도중 아현초등학교 부근 차도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향년 39세. 7월 14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자실과 민통련 등 재야 민주사회단체가 망라되어 <민족시인 故채광석 민주문화인葬>이 엄수되었고, 고인의 유해를 팔당 공원묘지에 안장했다.

1988년 5월, 서거 1주기를 맞아 동생 채희석과 공저로 유고집 철학에세이 『사람됨의 철학』 전2권과 7월, 『채광석전집』 1,2권이 출간되었고, 1989년 서거 2주기를 맞아 풀빛출판사에서 <채광석전집> 전 5권이 완간됐다.

1992년 7월, 서울에서 제5주기 추모의 밤, 1995년 9월, 대전에서 <시인 채광석 추모문학제> 1997년 7월, 서울에서 제10주기 추모문학의 밤이 개최됐습니다. 2000년 7월 12일, 제13주기를 맞아 <시인채광석시비건립위원회> 주최로 채광석 시인의 시 「기다림」을 오석에 새겨 광산 구중서의 글씨, 조각가 김운성의 제작으로 안면도 자연휴양림에서 채광석 시비제막식을 거행했으며, 같은 날 저녁 태안군청 강당에서 <채광석문학의 밤>이 개최됐다.

2004년 12월 18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30주년 기념행사>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예사무총장’으로 추대되었다.

2005년 1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시대의 불꽃> 시리즈 제14권으로 『채광석』이 박선욱 집필로 출간되었다.

2007년 7월 12일, 채광석 시인 제20주기 추모행사가 서울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과 안면도 자연휴양림 채광석 시비광장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문학평화포럼, 5·22사건 관련자, 김상진기념사업회 등의 공동주최로 개최됐다.

2017년 봄, 아들 채수왕이 결혼했습니다. 6월 14일,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채광석 시인 30주기 추모위원회>가 결성되었다.

2017년 7월 11일, 한국작가회의, 민예총 공동주최, <채광석 시인 30주기 추모위원회> 주관, 창비, 문학동네, 도서출판 풀빛,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후원으로 11일, 팔당 자하연 묘소를 참배했고, 7월 12일 저녁 6시 30분, <시인 채광석 30주기 추모의 밤>(김태균 연출, 김남일 이승철 진행)이 서울 대학로 <굿 씨어터>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이어 7월 22일, 안면도 자연휴양림 내 채광석 시비 광장에서 충남작가가회의, 대전작가회의의 공동주관으로 시비 참배 및 추모행사를 개최했다.(정리: 이승철 시인)

고 채광석 시인
안면도 자연휴양림에 있는 채광석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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