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교사, 거문고에서 수학을 이야기하다(1) - 박진호 경기북과학고 교사

- 도대체 거문고에는 어떤 수학이 담겨 있는 것일까
- 거문고의 괘율과 변화의 중심, 평균률

이정철 승인 2022.06.15 11:02 | 최종 수정 2022.06.15 11:09 의견 0

고등학생들이 연구를 진행한다. 배움은 덤이다. 연구와 배움, 이 둘 사이의 관계가 궁금하다. 배움의 결과는 더욱 궁금하다.

충남 예산 수덕사의 근역성보관.

그곳에는 1871년(고종 8년)에 태어나 13세에 출가한 만공스님이 즐겨 연주하던 거문고가 전시되어 있다. 이 거문고는 고려 공민왕 시기에 제작된 거문고로 알려져 있다. 공민왕의 거문고로도 불리는 이 거문고는 고려말 충신 야은 길재 선생에게 건네졌다가 조선 왕조가 세워진 후 왕실 소유가 되었다. 조선 왕실 내에서 보존되어 온 이 거문고는 조선 말 고종 시기에 이르러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에게 전해졌는데 만공스님과의 인연으로 만공스님에게 건네진 것.

수학 교사는 거문고에서 수학을 생각한다. 학생들과 함께.거문고에는 어떤 수학이 스며 있는 것일까? 공민왕으로부터 조선 시대를 거쳐 만공스님에게 전해진 이 거문고에서 어떤 수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흥미가 배어있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밝다.

<근역성보관의 거문고>

악학궤범(樂學軌範)은 거문고를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수학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함께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유의미한 수학적 설명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우리 선조들이 거문고를 제작하는 과정에 현대의 후손들이 배우고 알고 있는 수학적인 접근 방법은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음(陰)과 양(陽)’, ‘문(文)과 무(武)’의 조화가 거문고의 제작과정에 깊게 스며 있다. 당대를 살아간 선조들의 사상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기운의 운행과 변화를 거문고 가락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자연과 벗하며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리의 움직임을 가락에 담으며 아름다움과 조화 그리고 연결을 꿈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두에는 아름다움과 조화가 담겨 있다. 아름다움과 조화가 있는 곳에는 수학이 스며 있으니 거문고의 중후한 가락에 수학이 스며 있지 않을 수 없다. 수학 교사는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한 거문고를 고등학생들과 함께 현재의 시선으로, 현재의 수학이 갖는 또 다른 관점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도대체 거문고에는 어떤 수학이 담겨 있는 것일까?

거문고 여섯 개의 현 중에서 세 개는 안족 위에 올려져 있다. 나머지 세 개는 괘 위에 있다. 괘는 거문고의 몸통에 아교로 붙여져 있으므로 쉽게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르며 괘의 위치도 조금씩 움직였다. 조선 중기에 제작된 거문고의 괘율과 조선 말기에 제작된 괘율이 다르고 조선 말기에 제작된 거문고의 괘율과 현대에 제작된 거문고의 괘율은 또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대구박물관에 보물 제957호로 보관되어 있는 ‘탁영금’, 전남 해남의 고산유물전시관에 복원되어 있는 ‘아양’과 ‘고산유금’,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일송금’, 경기도 안산 성호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옥동금’ 등을 통해 거문고 괘율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다.

거문고에는 16개의 괘가 고정되어 있다. 각 괘에서부터 담괘까지의 거리를 조사하고 그 거리의 비율을 시대별 제작된 거문고별로 조사해보면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수덕사의 거문고가 고려말에 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괘의 위치는 50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조금씩의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평균율이라 불리는 음악 이론 곧 수학이 스며 있었다.

학생들과 수학으로 들여다보는 거문고의 괘율과 그 변화의 한 가운데에는 연구과 배움의 열정과 호기심이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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