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수능 시험은 2022년 대입부터 실시한 제도로, 국어와 수학 과목의 문과 이과 구분이 없이 문과생도 이과 과목을 응시하고 이과생도 문과 과목을 응시하도록 하여 응시 과목에 있어서 선택의 제한을 없앤 것이며, 사회탐구 과목과 과학탐구 과목도 문·이과 계열 구분 없이 총 17개 과목 중 최대 두 가지 과목을 선택하게 한 것이 골자다.
이러한 문·이과 통합 수능시험의 국어과목은 공통 국어(공통 문항 국어)와 선택 과목으로 나누었는데, 공통 과목은 문학과 독서를 각각 17문제씩 문·이과 구분 없이 응시하고, 선택 과목은 화법과 작문과 언어와 매체 중 택 1하여 문·이과 구분 없이 응시하는 방식으로서 성적 산출도 문·이과 구분이 없다. 수능시험의 수학 과목도 국어처럼 공통 수학 과목과 선택 수학 과목으로 나누고, 공통 수학 과목 22개 문항에는 수학1, 수학2 과목이, 선택 수학 과목 8개 문항에는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되 문·이과 구분 없이 응시하는 방식으로 성적 산출도 문·이과 구분이 없다. 탐구 과목의 사탐과 과탐의 경우 지망하는 대학에서 계열별로 요구하는 과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과 계열 지망을 원하는 학생들은 과학탐구 과목을, 인문이나 사회과학 계열로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사회탐구 과목에서 2가지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이과 통합 수능 제도는 창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2015 개정 교육과정상의 목표와 수시 강화, 정시 축소의 원칙에서 출발한 제도였다. 그러나 조국 사태와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공정 시비가 일면서 수시 축소, 수능 정시 강화의 정책으로 후퇴하였고, 창의 융합적 인재 양성도 수능 선택 과목 제도와의 인과성이 모호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문과 학생만 불리하다는 형평성 시비가 일고 있어 문·이과 통합 수능 제도는 이제 실효성이 문제되고 있으며 대대적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통합수능 제도의 문제점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되지 못하는 이유는 문·이과 통합 수능 제도의 점수 산출 방식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형평성 시비가 일고 있는 국어와 수학의 문·이과 통합 수능 제도의 점수 산출 방식은 무엇인지 그 개요를 살펴보자.
평가원은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어와 수학의 공통 과목 성적에 따라 원점수를 보정하는 과정을 만들었다. 학생마다 다른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문·이과 공통 국어 과목의 점수가 높은 학생에게 가중치를 주어 그 학생이 선택한 선택 과목의 점수에 플러스의 조정점수를 부여한 후 공통 과목(공통 문항) 점수와 선택 과목 점수를 합산한 등급과 표준점수를 입시에 반영한다. 수학의 경우도 국어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산출한다.
그런데 일반고 학생 수능 국어 점수의 경우 중상위권 이상은 문·이과에 따른 학생의 성적 분포는 별 차이가 없다. 문·이과 구분 없이 3등급 이내의 우수한 학생들은 어려운 ‘언매’를 선택하는 추세이고, 공통 국어의 성적도 우수하므로 가중치를 받아 선택 과목에서 조정점수가 올라가게 되므로 문·이과 중 우수한 학생들은 문·이과의 구별이 없이 국어 과목의 성적이 높게 나온다. 문제는 수학이다.
흔히 말하는 이과생은 ‘미적분’이나 ‘기하’과목을 응시하고, 문과생은 ‘확률과 통계(이하 확통)’과목을 응시하는데, 공통 수학과 선택 수학 과목에 걸쳐 전체적인 수학 성적 자체가 이과생들은 문과생들보다 훨씬 우수하게 나온다. 그러므로 이과생들은 공통 수학 점수가 높으므로 가중치를 받아 그들이 선택한 미적분과 기하가 문과생들이 선택한 확통보다 조정 점수도 올라가 높은 표준점수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공통과목 74점 만점에 미적분 응시생은 평균 40점, 확통 응시생은 평균 20점인 경우 미적분 선택과목 점수는 학생에 따라 40+@로 조정이 되어 표준점수를 계산하고 확통 선택 과목 점수는 학생에 따라 20+@로 조정이 되어 표준점수를 계산한다. 이렇게 보면 확통 선택자 점수가 훨씬 낮을 것처럼 보이나, 확통 선택자들의 점수 편차가 커서 확통쪽+@가 크기도 하고, 미적분 선택 과목 난이도가 확통 선택 과목 난이도보다 훨씬 높아서 전체적인 표준점수를 산출했을 때에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확통을 선택해서 불이익을 본다는 말은 문과 상위권에게는 해당될 수 있는 말이다. 상위권이 아닌 학생들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했을 때 성적이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도 높다.
2022년 대입 수능에서도 만점자들의 표준점수가 미적분, 기하 147점, 확통 144점으로 3점 정도 차이가 났다. 문제는 이 3점이다. 확통보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했을 때 상위권 학생들은 표준점수를 좀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2022학년도 수능 수학 1등급 가운데 확통을 선택한 문과생은 겨우 5.8% 정도에 불과했다. 국어·수학·탐구 영역 표준점수를 합산한 점수를 봐도 상위권인 420~429점대와 410~419점대,
400~409점대에 확통을 선택한 학생은 각 2.1%, 7.3%, 13.5%에 불과했다. 상위권 대학이 경쟁이 치열하여 1점 차이로도 당락을 좌우하는데 확통을 선택한 문과 학생들이 원점수에서 만점을 맞고도 이과 학생들보다 표준점수가 마이너스 3점을 부여받았다면 상당수 대학에서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문과 학생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다. 또한 이과 학생들에게 상위권 대학의 상경대학과 인문·사회대학의 합격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2022 입시처럼 서울대나 서강대 등 인문계열임에도 국어보다 수학 영역의 반영 비율을 높이거나 상당수 대학처럼 이과생들의 선택 과목 교차지원을 허용하면서도 문과생들의 이과 교차지원을 어렵게 한다면 이과생들만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실제 2022년 대학 정시에서 이과 학생들이 인문계 학과에 대거 교차 지원해 상당수가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적분이나 기하 선택자가 인문 계열에 교차지원한 학생이 서강대는 60%, 중앙대는 56%, 서울시립대는 55%나 차지했다. 2022년 대입 정시 서울대의 경우 인문·사회 계열 최초 합격자 중 절반 가까이는 이과생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이나 기하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이과에서 광운대 갈 정도의 학생이 성균관대 인문계의 최고 학과에 지원서를 냈다는 말도 있다. 이는 수능점수가 잘 나온 이과 학생이 적성보다 서열만 중시하여 인문계열 대학에 진학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현재 문과 학생들의 이과 교차지원은 거의 불가능한 구조이다. 이과 대학에서 사회탐구가 아닌 과탐을 요구하고, 수학에서 문과생이 주로 보는 확통이 아닌 미적분이나 기하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실제로는 문과생에게는 자물쇠를 걸어놓고 이과생에게 유리한 제도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같이 통합형 수능은 수학이 문·이과 공통 과목과 선택 과목의 형태로 출제되고 시험도 같이 치르고 성적도 문·이과 함께 산출하면서 수학에 재능이 있어 이과를 선택한 학생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문득 이솝 우화의 여우와 학의 식사 초대가 떠오른다. 어울릴 수 없는 쌍방을 어느 일방의 잣대로만 재단하면서 상대방은 실력이 없으니 감수하라고 비난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이런 제도에서는 이과생의 상위권 독식은 자명한 일이고 불공정 시비가 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 결과는 문과생의 폭망과 재수 낭인으로 이어진다. 문과생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적성과 진로와 상관없는 이과생들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미적분이나 기하학을 공부하고 재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문·이과를 불문하고 상위권 학생들은 미적분이나 기하 등 이과 과목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적성에 맞아 학생들이 잘할 수 있는 과목을 공부하고 창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2015 교육과정의 취지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적성을 무시하고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드는 처사다.
한편 평가원은 수능 시험 결과에 대해 최소한의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수험생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백분위와 표준점수 같은 세부 정보가 필요한데 평가원은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선택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모 평가원 수능본부장은 선택과목별 표준점수, 평균, 백분위 등이 제공되면 학생들이 잘할 수 있는 선택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 체제에 맞춰 과목을 고르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에 치러진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는 수학 선택 과목인 확통을 선택한 비율이 연초보다 줄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 유불리에 따라 이미 발 빠르게 과목을 바꿨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상위권 학생들이 수능 득점에 따라 문이과 교차 지원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평가원의 입장은 실효성이 없어 보이며 수험생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처사다.
본래 문·이과를 나눈 것은 적성을 고려한 결정이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자는 취지인데 2028년 고교학점제를 하기로 하면서 문·이과 경계를 없애기 위한 일환으로 통합 수능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통합 수능은 전제조건으로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수시는 절대평가 체제로 가며 수능을 반영하지 않는 수시 학종 전형을 대세로 하는 프레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입시 부정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수시 학종에 불공정 시비가 일었고, 거꾸로 정시 수능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시에 통합 수능 제도를 실시하다보니 지금의 문과 수능 불이익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통합 수능 제도는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첫째, 통합 수능의 전제조건이 사라진 이상, 지금의 수능 체제를 바꿔 문이과를 분리하여 성적 산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형평에도 맞다. 2022년 이전의 수능 방식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면 성적 산출만큼이라도 문·이과 분리하는 것이 옳다. 지금의 제도를 존속시키기에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 학교에서는 현재 문이과가 없지만 수능에서는 어떤 과목을 선택했느냐 따라 사실상 문·이과가 존재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세우자. 상위권 문과생들은 서울 주요 대학 원하는 문과 대학에 합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불이익을 주고, 입시 낭인을 초래할 뿐 아니라, 문과생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고 잘하지도 않는 미적분을 공부한다는 것은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에도 정면으로 어긋나므로 문·이과 성적 산출의 분리가 필요해 보인다.
둘째, 현행 이과생에게만 유리한 문이과 교차 지원을 제한하거나 문·이과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보장하는 선에서 조정이 필요하다. 문과생은 이과로의 교차지원이 거의 막혔으면서 이과생은 문과생의 전공을 침범하게 한다면 형평에도 맞지 않다. 이 문제는 대학에서 선택 과목 조정과 반영 비율 조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셋째, 평가원은 실효성이 의심되는 수능 시험 세부 정보 공개 미공개 방침을 철회하고, 수험생의 혼란을 방지하고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백분위와 표준점수 같은 세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성하신/ 서울 광남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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