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수학수업, 혼자 가능할까? / 박진호
수업이 예술이 되기 위한 거룩한 과정
이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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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6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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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수업 교실에서 늘 가르치던 방법대로, 어제와 같은 방법으로 학생들을 만나는 것과 날마다 달라지는 학생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와 학생들이 함께 변해가는 것의 정신적인 거리는 얼마나 될까? 측정이 가능할까?
사람의 앞가슴과 등이 만나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앞과 뒤의 거리는 멀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몸인데 말이다.
나와 학생들이 더불어 하나라면 학생들과 나는 함께 배우며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힘들거나 학생들이 힘들어서 함께 배우는 과정이 어렵다면 아직 교사와 학생의 사이가 그만큼 멀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일상의 반복적 상황에서 탈출해 낯선 지성과 감각으로 나와 함께 하는 세상을 감지하는 연습은 교사로 교실에 들어서는 거룩한 수업 일상의 기적일 수 있다. 늘 그런 자세로 학생들과 만날 수 있겠는가? 스스로 묻고 또 묻는다.
교사가 수학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학생들과 만난다. 그 언어는 이해 정도가 다르다. 교사가 이해한 정도와 학생이 이해한 정도가 다르다는 말이다. 교사와 학생의 이해 정도가 같은 수준에 도달할 때 수학은 스스로 작동한다. 개념과 언어에 스며 있었던 추상성과 형식성이 살아나고 살아난 그 언어의 본래의 뜻 즉 생기가 문제 상황을 해석하기 시작하며 문제 해결에의 아이디어를 끄집어낸다. 수학이라는 언어에 교사의 이해와 학생의 이해가 함께 같은 수준에 도달하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통찰이라고도 한다. 이런 경험이 적어도 수학을 함께 배우는 현장에서는 자주 일어나야 된다.
언어는 상징과 표상으로 구성된다. 표상은 의사소통의 최소한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상징을 담아내기 위한 축약된 형식을 갖는다. 수학 교사가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이 갖는 상징과 학생이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이 갖는 상징이 다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표상은 비록 동일할 수 있다고 해도. 상징의 범위는 수학이 담아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무관하지 않다. 수학자들은 바로 그 지점에 노출되어 있다. 마치 예술가처럼!
수학 교사가 수학 수업을 진행하면서 반드시 의식해야 하는 지점은 학생들과 수학 교사의 사용하는 언어의 상징적 수준을 표상적 수준과 거리를 좁히면서 학생들과 상징적 수준에서의 의사소통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의 수업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표상적 수준이 학원이나 선행학습 등으로 이미 굳어져 있다면 그 상태를 돌아보아 상징적 수준의 유연성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하고 표상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의사소통에 어려워한다면 개념과 원리에 학생 개인의 이해에 맞도록 반복적 대화와 설명이 수업 시간을 통해 제공되어야 한다.
수학 교사의 수업이 예술가의 창조적 작품을 만들어가는 숭고한 행위가 될 수 있으려면 수학 교사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끊임없는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수업이 예술이 되기 위한 거룩한 과정이다. 더욱이 거룩한 수업은 수학 교사 혼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수학 교사가 수업 현장에서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과 함께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본다는 의미일 수 있다. 자신의 수학 수업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돌아본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거룩한 수학 수업. 언제쯤 아이들과 더불어 가능할 수 있을까? (경기북과학고 수학교사 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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